매직 더 개더링(Magic: The Gathering, 이하 MTG)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 세계 게이머들이 수집하고 교환하며 즐겨온 전설적인 트레이딩 카드 게임(TCG)이다. 1993년 리처드 가필드가 고안하고, 해즈브로(Hasbro) 산하 위저즈 오브 더 코스트(Wizards of the Coast, WotC)가 출시한 이 게임은 지금까지도 물리 카드 시장의 제왕으로 군림한다. 단순한 카드 게임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MTG는 2조 원이 넘는 연 매출을 기록하며, 포켓몬이나 유희왕조차 넘어서기 어려운 독보적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후발주자들은 태생적으로 불리하다. 1990년대 후반 포켓몬과 유희왕이 그나마 성공했지만, 이후 등장한 수많은 카드 게임은 MTG의 생태계에 진입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있다. 디즈니의 ‘로르카나(Lorcana)’, ‘드래곤볼’과 ‘원피스’ TCG 같은 초대형 IP들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물리적 카드 시장조차 새로운 경쟁의 장으로 변하고 있다.
TCG의 디지털 전환과 웹3의 등장
물리적 카드 시장이 과열되는 가운데, 디지털 시장은 아직 잠재력을 다 펼치지 못하고 있다. MTG의 2023 - 2024년 매출은 20억 달러를 넘겼지만, 해즈브로의 2025년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위저즈 테이블탑(Wizards Tabletop) ” 부문 매출은 37% 성장한 반면, 디지털 부문은 고작 1% 증가에 그쳤다.
이 수치는 MTG 팬들이 여전히 실물 카드를 선호함을 보여준다. 실제로 카드의 질감, 수집의 즐거움, 그리고 실물 대전의 경험은 여전히 디지털 버전으로 완전히 대체되기 어렵다.
그러나 만약 실물 카드를 스캔해 NFT로 등록하고, 그 카드를 그대로 온라인에서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떨까? 기존에는 실물 카드와 디지털 카드가 별개로 존재해, 플레이어는 같은 카드를 두 번 구매해야 했다. 하지만 웹3 기술을 활용하면 하나의 실물 카드가 ‘디지털 자산’으로 확장되는 새로운 경험이 가능해진다. 이는 단순한 디지털화가 아니라, 유저 자산을 온체인으로 영구 보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화한다는 뜻이다.
블록체인과 NFT가 여는 ‘진짜 소유권’의 시대
해즈브로 전 CEO 브라이언 골드너는 “NFT는 진정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동안 구체적 실행은 없었지만, 향후 위저즈가 다음과 같은 선택을 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 디지털 카드팩 가격을 실물보다 낮게 책정해 진입장벽을 낮춘다.
- 블록체인 기술로 실물 카드의 ‘진품 인증’ 및 ‘소유권 이전’을 지원한다.
- 온라인 플랫폼에서 거래되는 모든 카드에 로열티를 부과해,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를 만든다.
이러한 구조가 실현된다면, 위저즈는 현재 디지털 카드 판매로 얻는 수익을 넘어 2차 시장의 거래까지 통제할 수 있는 초강력 생태계를 구축하게 된다.
이런 시도는 이미 시작됐다. 유비소프트는 이뮤터블(Immutable)과 협력해 ‘마이트 앤 매직: 페이츠(Might & Magic: Fates)’라는 웹3 카드 게임을 개발 중이다. 모든 카드는 NFT 형태로 발행되며, 게임은 완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플레이어는 카드팩을 구매하지 않아도 게임 내 플레이로 모든 카드를 얻을 수 있고, 원한다면 마켓플레이스에서 자유롭게 거래할 수도 있다.
이는 단순히 “게임 내 아이템 거래가 가능하다”는 수준을 넘어, 플레이어가 게임 생태계의 일부를 ‘소유’할 수 있는 구조로 발전하고 있다. 웹3는 기존 게임사가 통제하던 폐쇄적 구조를 깨고, 유저가 직접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도록 만들 수 있다.
레거시 IP의 웹3 진입이 갖는 파급력
이제 문제는 규모다. 만약 위저즈 오브 더 코스트가 직접 웹3 버전의 MTG를 출시한다면, 기존 웹3 스타트업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MTG의 주요 유저층은 30~40대의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게이머로, 평균 플레이 기간이 5년 이상이다. 즉, 웹3 게임이 노리는 핵심 타깃이 이미 MTG에 존재한다.
MTG가 웹3 시장에 진입할 경우, 그 영향력은 단순한 ‘신작 출시’가 아니라, 산업 구조의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스타트업이 시장에서 수년간 쌓은 실험적 모델은 대형 IP의 한 번의 진입으로 모두 흡수될 수 있다. 웹3는 탈중앙화를 내세웠지만, 역설적으로 ‘IP 중심의 재집중화’가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현상은 블록체인 인프라 시장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현재 주목받는 레이어2 비트코인 하이퍼 토큰(Layer2 Bitcoin Hyper Token) 프로젝트는 그 대표적 사례다. 비트코인의 보안성과 신뢰 위에서 빠른 거래 처리와 확장성을 제공하는 이 토큰은, 웹3 게임·NFT·실물 자산 토큰화(RWA) 등 실사용 영역에서 핵심 인프라로 떠오르고 있다. MTG 같은 대형 기업이 웹3로 전환할 때 필요한 기반이 바로 이런 레이어2 솔루션이다.
즉, 이제 시장의 주도권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이 아니라, 기존 IP + 인프라 기술력 + 블록체인 신뢰성을 모두 갖춘 대형 플레이어에게로 옮겨가고 있다.
웹3 TCG의 가능성과 한계
하지만 이러한 이상적인 그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냉정하다. 웹3 게임 시장은 여전히 불안정하며,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평균 4개월 내 사라진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 부재 – 플레이어의 초기 투자금에만 의존한다.
- 커뮤니티 유지 실패 – 보상이 줄면 유저도 빠르게 이탈한다.
- 시장 신뢰 부족 – NFT나 코인 가치 하락 시 게임 가치도 급락한다.
‘갓즈 언체인드(Gods Unchained)’나 ‘스플린터랜즈(Splinterlands)’ 같은 대표 웹3 TCG조차 장기적으로 MTG나 하스스톤(Hearthstone)의 충성도를 넘어서지 못했다. TCG의 핵심은 ‘게임성’뿐 아니라 수집, 교환, 희소성, 추억 같은 정서적 가치에 있다. 웹3가 이를 완전히 대체하려면, 단순히 NFT를 붙이는 수준을 넘어 진정한 팬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웹3는 진정한 ‘기회’인가, 혹은 ‘종말’의 서막인가
결국 웹3는 양날의 검이다. 기술적으로는 누구나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탈중앙 구조를 제시하지만, 실제로는 대형 기업의 자본력과 브랜드 신뢰가 승부를 가르는 시장이 되고 있다. 웹3 TCG나 NFT 게임은 ‘민주화된 시장’을 외치지만, 실상은 거대 IP 중심의 집중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스타트업들은 여전히 빠르게 실험하고 있지만, 생태계가 커질수록 이들의 위치는 더욱 불안정해진다.
기술의 발전이 반드시 새로운 기회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웹3의 등장은 스타트업에게 마지막 실험의 시간이자, 동시에 생존을 건 시험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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